1. 사씨남정기
저자 김만중
- 숙종의 민비폐출 사건을 모델로 당대현실을 소설화 한 사씨남정기 줄거리를 적어봅니다.
-등장인물
사씨(사정옥) 사급사의 딸로 여승이 지녀야 할 부덕(婦德)과 미모를 지닌 인고(忍苦)의 여인.
여승 묘혜의 중매로 유연수와 혼인한다. 대를 이을 자식을 낳지 못하자 첩으로 교씨를 데려오지만 교씨에 의해 모략을 당하고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목숨을 구하고 유씨 집안으로 돌아가 집안을 다시 안정시킨다.
유연수 개국공신 유기의 후손이며 유희의 아들. 어려서는 영민했으나 교씨와 동청 등에 의해 총명함이 가리워진다. 첩으로 들어온 교씨와 문객 동청에게 속아 사씨를 유씨 집안에서 몰아내고 교씨를 본처로 삼는다. 동청과 간신 엄숭의 간계로 모함을 받아 유배를 당한다. 후에 교씨와 동청의 계략을 알게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교씨(교채란) 사씨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유연수의 첩으로 들어오는 여인.
마음이 교활하고 간악하여 사씨를 내쫓고 본처가 되려고 한다. 유씨 집안에 문객으로 들어온 동청과
결탁하여 사씨를 내쫓고 유연수의 본처가 된 후 유연수마저 누명을 씌워 귀양보낸다. 동
청과 사통하면서 유씨 집안의 재물을 가로채나 후에 철저히 응징된다.
동청 유씨 집안에 문객으로 들어오는 간악한 인물. 교씨와 정을 통하면서 모의하여 갖은 모략으로 사씨를 유씨 집안에서 내쫓는다. 간신 엄숭과 결탁하여 유연수마저억울한 누명 씌워 내쫓는다. 그러나 후에 임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엄숭 유연수의 아버지 유희와 대립하는 인물이며 간신. 동청에게 뇌물을 받고 유연수에
게 무고한 죄를 씌워 박탈관직하고 귀양보낸다. 후에 임금이 총명을 되찾자 관직에서 물러난다.
묘혜 우화암의 승려로 유연수와 사씨를 중매하는 인물. 사씨에게 관음화상를 가져다가 관음찬을 받고 유연수와 혼인을 이루게 한다. 사씨가 교씨의 모략으로 남행하여 죽게 되었을 때 수월암에서 기다리다가 사씨의 목숨을 구해준다. 또한 유연수가 위급하여 물에 빠져 죽으려 할 때도 유연수의 목숨을 구해준다. 후에 사씨와 유연
수가 극적으로 상봉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원조자가 된다.
-줄거리
유연수와 사씨의 혼인
유한림(劉翰林)이 육례(六禮)를 갖추어 친히 신부를 맞이하였다. 사소저(謝小姐) 위의(威儀)
의 성대함과 예도(禮度)의 아름다움을 두고, 당시 진신(縉紳, 홀을 꽂은 사람이라는 말로 널리 고관을 뜻함)들 사이에서는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명나라 가정(명나라 제11대 황제 세종(世宗 1522∼1566)의 연호)연간 북경의 순천부에 유희라는 사대부가 있었다. 그는 엄숭과 뜻이 맞지 않자 늙고 병이 들었다 는 구실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다.
천자는 유희의 치사를 허락하면서 그에게 태자소사(태자를 보충하여 이끌었던 사부의 일원)의 직함을 주어 그를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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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에게는 누이가 한 사람 있었는데 일찍이 두강의 아내가 됐다가 지아비를 잃고 혼자 살고 있었다.
누이인 두부인에 대한 유희의 애정은 돈독했다.
유희는 나이 사십이 지나서 처음으로 아들 유연수를 낳았는데 어머니인 최씨는 일찍 죽고 말았다. 유연수가 성장하자 용모가 관옥(冠玉)같았으며 열네 살 때 향시에서 일등으로 합격하고 열다섯 살 때는 문과에 급제했다.
유연수가 급제하자 유희는 훌륭한 며느리를 얻으려는 생각으로 두부인과 함께 성안의 여러 매파들을 불러놓고 어진 처녀를 물색했다. 주파라는 매파가 신성현의 사급사(황제의 정사를 좌우에서 보좌하던관료)의 딸 사정옥이 어질고 덕성이 있음을 칭찬한다. 이에 두부인이 우화암 승려 묘희에게 시켜 남해관음 화상 아래 사정옥의 글솜씨를 알기 위해 찬(讚)을 써오게 한다.
묘희는 사급사의 집으로 가 사정옥을 보고 그 자태에 감탄한다. 묘희가 사정옥에게 남해관음 화상아래 글을 지어줄 것을 요구하자 사정옥은 재주가 없다고 거절한다. 묘희의 거듭되는 부탁으로 사정옥은 남해관음 화상 아래 글을 짓기 시작했다. 사정옥은 손을 씻고 향불을 피웠다. 이윽고 붓을 들어 관음대사찬 백이십팔 자를 지어 작은 해서체로 족자 위에 써 넣었다. 묘희는 매우 기뻐하며 족자를 가지고 유희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희와 두부인이 그 족자를 보고 사정옥의 재주와 덕성과 견식을 칭찬하며 며느리 삼기를 원했다. 유
희는 매파를 시켜 사급사의 집에 의향을 물었다. 그러나 사정옥은 유씨 집안이 자신의 덕을 칭찬하기 보다는 자신의 색을 칭찬하고, 부귀함만을 자랑하면서 아버지의 성덕(盛德)에 대해서는 칭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인을 거절한다.
유희는 매파를 통해 사정옥이 유연수와의 혼인을 거절한 이유를 듣고 이튿날 친히 신성으로 가 현령
을 만났다. 현령에게 사급사댁과 청혼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며 사급사댁을 방문하여 사급사의 청명(淸明)함을 흠모하며 사정옥이 부덕(婦德)을 갖추었다고 들었다라고 전할 것을 부탁한다. 이튿날 현령은 사급사댁으로 가서 유희의 말을 전한다. 사급사의 부인은 유모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유연수와 사정옥의 혼인을 허락한다. 유희가 길일을 택해 혼인을 시키자 사정옥의 위엄스러운 태도와 예법의 아름다움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유희는 사씨에게 부도(婦道)가 무엇인지를 묻자 사씨는 지아비가 허물이 있을 때라면 간언하는 것이 옳다라고 말한다. 유희는 사씨를 칭찬하고 훌륭한 거울과 옥환 한 쌍을 주었다. 사씨는 효성과 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시고 아랫사람들을 대했다.
첩으로 영입된 교씨가 사악한 마음으로 사씨를 모함 그들이 성혼한지 또한 십 년 가까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직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마음속
으로 몹시 근심하면서 홀로 생각하였다. 체질이 허약하여 자녀를 생육할 수 없는가 보다.
사씨가 조용히 한림에게 첩을 두라고 권고하였다.
그럭저럭 서너 해가 흘렀다. 유희가 병을 얻어 자리에 누웠다. 사씨와 유연수가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나 유희는 유연수와 사씨에게 집안을 잘 다스릴 것을 유언하고 죽는다. 사씨와 유연수는 매우 슬퍼한다. 일월은 유수와 같아 유연수가 관직에 나아갔다. 유연수는 자주 소(疏, 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올려 조정의 득실을 논했다. 그런데 엄승상(엄숭)이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러 해가 지나도록 관직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 무렵 유연수 부부는 나이가 스물세 살이었다. 그들이 성혼한지도 또한 십 년 가까이 흘러갔다. 하
지만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마음속으로 몹시 근심하면서 유연수에게 첩을 둘 것을 권고했다. 두부인이 그 말을 듣고 첩을 두는 것은 집안의 환난의 근본이라며 반대한다. 그러자 사씨는 아직 자녀를 두지 못한 일은 옛날 법도에 따르면 내침을 당할 것이며, 부녀자들이 투기하는 습속은 본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사씨는 매파를 통해 교씨를 천거받는다. 교씨는 하간부 사람으로 성은 교요 이름 채란이다. 원래 사족(士族)으로서 부모가 일찍 죽었으므로 언니와 의지하며 살았다. 나이는 열여섯 살이며 항상 말하기를 집안이 쇠하였으니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상의 첩이 되는 편이 좋겠어라고 했다. 사씨는 곧 교씨를 첩으로 맞아들인다.
유연수는 교씨가 거처하는 집에 이름을 붙여 백자당이라 했다. 그리고 시비 납매 등 네 사람에게 명하여 시중을 들게 했다. 집안의 하인들은 교씨를 일컬어 교낭자라 불렀다. 교씨는 총명하고 말을 잘하고 남의 마음을 잘 사로잡는 여자였다. 유연수의 뜻을 능히 받아들었으며 더욱이 사씨를 잘 섬겼다.
그러므로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칭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후 반 년도 채 지나기 전에 교씨는 임신을 했다. 유연수와 사씨가 매우 기뻐했다. 그런데 교씨는 남
자아이를 생산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유명한 점쟁이 십낭자를 불러 여자아이를 남자아이로바꾸는 신술을 쓰게 했다. 십낭자는 부적과 기괴한 물건들을 많이 만들어 교씨가 거처하는 방의 이부자리 속에 숨겨놓았다. 그후 달이 차자 교씨는 과연 남자아이를 낳았다. 유연수와 사씨는 기쁨을 이길수가 없었다. 교씨가 아들을 낳은 후로 유연수는 교씨를 더욱 후하게 대접했다. 아이의 이름은 장주라
고 불렀다. 사씨와 사씨의 사랑이 끝없음도 피차 다를 바가 없었다.
저물어가는 가을 삼월의 어느날이었다. 교씨는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었다. 교씨가 거문고로 탄 것은 당나라때의 예상우의곡(당 현종이 꿈에 천상의 월궁에 가서 그 곳의 노래와 춤을 보고 난후 지은 것)이었다. 사씨는 그 곡조가 사람의 마음을 화평하게 하기보다는 어지럽게하고 노래한 시 역시 좋지 않다고 하며 그 곡조를 부르지 말라고 타일렀다. 교씨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날 저녁 유연수가 서원에서 집으로 돌아가 백자당으로 갔다. 하지만 술에 취하여 잠을 이룰 수가없어서 교씨에게 명하여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러나 교씨는 그 명을 따르지 않고 눈물을 펑펑 흘렀다. 유연수가 그 까닭을 묻자 교씨는 사씨가 자신에게 상공께서 너를 취하신 까닭은 단지 후사를 위한 것일 따름이었다. 집안에 미색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었어. 그런데 너는 밤낮으로 얼굴이나 다독거렸지. 또한 듣자하니 음란한 음악으로 장부의 심지를 고혹하게 하여 죽은 시아버지의 가풍을 무너뜨리고 있다 하더구나. 이는 죽어 마땅한 죄이다. 네가 만일 이후로도 행실을 고치지 않으면 내 비록 힘은 없으나 아직도 여태후가 척부인(한나라 고조에게 총애를 받던 여인. 왕후 여태후는 그녀를 시기하다가 고조가 죽은 후, 그 눈과 귀를 뽑고 수족을 자른 뒤에 측간에 넣어놓고 인체라고 부르게 하였음.
인체는 인간돼지라는 뜻)의 손발을 자르던 칼과 벙어리로 만들던 약을 가지고 있느니라. 앞으로 각별히 삼가하라고 했다고 말한다. 유연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의아한 마음으로 교씨의 말이 실정보다 지나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교씨를 위로한다. 교씨는 끝내 마음을 풀지 않은 채 다만 유연수에게 사례하는 척했다.
동청과 함께 사씨를 모함하여 내쫓고 드디어 정실이 되는 교씨는 부인이 동청을 미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평소 한림이 동청을 신임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교씨는 동청을 한패로 만들어 외원(外援)으로 삼고자 하였
다. 이에 남몰래 납매로 하여금 동청과 사통(私通)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주 일
을 꾸몄다. 이십낭은 교씨를 도와 남자를 고혹하는 방술을 행하게 하였다. 그로부터 한림
은 점점 교씨에게 빠져들어 정신과 생각이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어느날 교씨의 시비 납매가 사씨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교씨에게 전한다. 교씨는 사씨가 아들을 낳
으면 자신의 신세가 좋지 않을 것을 생각하여 납매와 함께 은밀하게 음모를 꾸민다. 마침내 낙태하게
만드는 약을 사서 사씨가 복용하는 약 속에 몰래 섞어 놓았다. 그렇지만 사씨는 그 약을 마시자마자
문득 구역질을 하며 그대로 토해버렸다. 그 계책도 성공할 수 없었다.
사씨는 달이 차자 과연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골격이 비상하고 얼굴이 뛰어났다. 유연수는 크게
기뻐하여 아이의 이름을 인아라고 했다. 인아가 자라자 유연수는 아이가 돌아가신 아버지 유희를 닮
았다고 하여 인아를 더욱 사랑했다. 교씨는 위기감을 느끼고 십낭자를 불러 계교를 꾸미기로 한다. 그
들은 한 마음이 되어 간악한 음모와 사특한 계교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기미
가 워낙 은밀했다.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날 이부에 사는 석낭중이 편지로 동청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유씨 가문의 문하에 둘 것을 부
탁한다. 동청은 원래 사족의 자제였다. 부모가 일찍 죽자 악동들을 따라 다니며 장기 두고 술이나 마
셨다.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여 돌아갈 곳이 없어 벼슬아치들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뛰어난
재주가 몇 가지 있었는데 첫째는 아름다운 용모요, 둘째는 교묘한 말솜씨요, 셋째는 잘 쓰는 글씨였
다. 사대부들이 그를 처음 만나면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조금만 함께 지낼 것 같으면 자
제를 꾀여 불의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가는 곳마다 용납을 받을 수가 없었다. 유연수는 문하에 글씨
를 잘 쓰는 사람을 구하던 중 동청을 서기로 삼는다. 동청은 매사에 문득 유연수의 뜻을 잘 맞추었다.
그러므로 유연수는 그를 크게 신임했다. 그의 말이라면 따르지 않는 것이 없었다.
교씨는 사씨가 동청을 미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한 평소 유연수가 동청을 신임한다는 사실도 잘 알
았다. 그러므로 교씨는 동청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남몰래 자신의 시비 납매로 하여금 동청과 사
통(私通)하게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을 자주 꾸몄다. 또한 이십낭은 교씨를 도와 남자를 고혹하는
방술을 행하게 했다. 그로부터 유연수는 점점 교씨에게 빠져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교씨는 십낭자와 동청과 함께 사씨를 모함할 계책을 세운다. 동청은 사씨의 필체를 모방하여 교씨와
아들 장주가 잘못되기를 비는 방자를 써서 부엌에 흘리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교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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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청은 사통하고 드디어 장주가 감기에 걸리자 납매가 그 글씨를 부엌에서 주워온 것처럼 하여 유연
수에게 보인다. 유연수는 그 글을 읽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유연수는 묵묵
히 생각에 잠겼다가 그 글을 불에 넣어버렸다. 유연수는 저주하는 글을 보고 난 후로 내심 그 글씨가
사씨의 필적과 같다고 믿었다. 마침내 사씨를 의심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다. 그렇지만 또한 난처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에 그 글을 불에 넣어 그 자취를 없애게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유
연수는 사씨에 대한 정이 갑자기 떨어졌다. 다만 참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그럴 때 신성현의 사급사댁에서 어머님의 병이 위급하니 세상을 떠나기 전에 빨리 와달라는 편지가
사씨 앞으로 왔다. 사씨는 남편의 승낙을 받고 교씨를 불러 집안일을 부탁한 다음 곧 본가로 떠났다.
유연수도 여가를 타서 곧 문병을 가 약물을 올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서 병세는 점점 위중했다.
이 무렵 산서·산동·하남 지방이 여러 해 동안 계속해서 흉년이 들었다. 백성들은 사방으로 이리저
리 흩어졌다. 천자가 근심하여 세 명의 신하에게 명하여 세 방면으로 나가 백성들의 고통을 보살피게
했다. 유연수는 산동지방으로 나가 그곳 민생을 돌보았다.
이렇게 사씨가 본가로 가고 유연수마저 집을 떠나니 교씨는 동청과 부부간처럼 지내면서 다시 사씨를
모해할 계교를 꾸몄다. 동청의 계교에 따라 교씨는 자신의 심복인 납매를 시켜 그의 사촌동생인 사씨
의 시녀 설매를 금은패물로 매수한다. 설매를 통하여 사씨의 패물상자 속에서 지난날 사씨가 시아버
지 유희에게서 받은 옥지환을 몰래 훔쳐내도록 했다. 동청은 이 옥지환을 자신의 친구 중에서 심복하
는 냉진이라는 불량한 자에게 주어 유연수에게 의혹을 자아내도록 사건을 꾸미게 된다.
그 무렵 유연수는 산동지방에 도착해 민간의 물정을 살피기 위해 어느 객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곳에서 장진이라는 미소년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잠을 잤다. 아침에 유연수는 소년의 옷고름에
한개의 옥지환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 옥환이 자신의 집안의 물건임을 알고서 어디서 구했는가
를 물었다. 소년은 예전에 사귀던 여인이 준 물건이라고 말하고 처연히 슬퍼했다.
유연수는 반년만에 집으로 돌아와 사씨에게 옥지환이 있는가 하는 것부터 알아보았다. 사씨는 시비를
시켜 상자를 가져다가 패물함을 열어보게 했다. 다른 보물은 다 있었으나 옥지환만 보이지 않았다. 유
연수는 사씨의 행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부인이 유연수에게 집안의 악인이 옥지환을 훔쳐
내 사씨를 모함하는 것이라며 사씨를 두둔한다. 유연수는 혹시 시녀들이 훔쳐내지 않았나 하여 형구
를 갖추어놓고 그들을 엄하게 문초하였으나 밝혀낼 수가 없었다. 사씨는 오명을 씻을 길이 없었다. 초
가에 거적을 깔고 죄인으로 자처했다. 교씨는 그를 매우 통쾌하게 여겼다.
그 무렵 두부인은 사씨를 위하여 옥환 소식을 두루 탐문했다. 그러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얼마후
에 두부인의 아들 두억이 과거에 급제하여 장사의 추관(지방에서 형벌을 관장하던 관원)이 됐다. 아들
을 따라 두부인이 떠나자 교씨와 동청은 사씨를 없앨 흉계를 짜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동청이 먼저 교씨의 아들인 장주를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울 계교를 내놓았다. 하지만 간
악한 교씨도 차마 제자식만을 죽일 수 없었다. 그렇게 되니 이번에는 동청이 시비 납매를 위협하여
장주가 잠이 든 틈을 타서 눌러 죽이게 한다. 납매는 사촌동생인 설매를 보고 이제 유연수가 문초하
면 사씨가 장주를 죽이라고 했다고 대답할 것을 강요했다. 일이 그쯤 되니 동청의 계교대로 장주를
죽인 죄가 사씨에게로 돌아갔다. 교씨는 아들이 죽은 것을 슬퍼하며 목을 매려고 하면서 사씨의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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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을 유연수에게 고한다. 유연수는 십여년세월 함께 살아온 사씨를 외인과 사통하고 간악한 종년과
한편이 되어 천륜을 상하게 한 천지간에 용납못할 죄를 저지른 음부라고 꾸짖었으며 일가친척들 앞
에서 그 죄상을 낱낱이 이르고 본가가 있는 신성현으로 내쫓는다.
사씨의 남행(南行)고난과 유연수의 귀양
사씨는 붓을 들어 정자 기둥 위에 크게 글씨를 썼다. 모년모월모일, 사씨정옥투수사(謝氏
貞玉投水死) 이윽고 붓을 던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푸른 하늘이여! 어찌하여 나
로 하여금 이렇게 혹독한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가? 옛사람이 이른바 복선화음(福善禍淫)이
라는 말도 부질없는 소리가 아닌가?
유씨의 집에서 쫓겨난 사씨는 친정집이 있는 신성현으로 돌아가면 유씨가문과 영영 인연이 끊어질 것
이 염려되어 신성현으로 가는 도중 방향을 돌려 성동의 시부모의 산소밑에 머물렀다. 사씨는 남을 대
신하여 바느질과 길쌈을 하면서 조금씩 그 대가를 받으며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교부(轎夫,가마
를 매던 일꾼)가 돌아가 사씨가 선영 아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교씨에게 고한다. 교씨와 동청은
또 다시 흉계를 꾸며낸다. 냉진으로 하여금 속임수를 써서 사씨를 취해 절행을 훼손하게 하려는 것이
다. 동청은 두부인의 필적을 흉내내어 두부인이 사씨를 만나고 싶어하며 서울로 와서 함께 지내자는
편지를 사씨에게 보낸다. 그날 밤 사씨의 꿈속에 죽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나타나 그 편지는 진품
이 아님을 말한다. 또한 남쪽으로 오천 리 밖으로 나가 몸을 보존하여 화를 피하라고 이른다.
사씨는 잠에서 깨어나 그 편지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감기가 걸려서 서울에 가지 못한다고 핑계를
대고 냉진의 마수가 미치기 전에 그 곳을 떠나 꿈속에서 시부모가 말한 두부인이 있는 먼 남사평의
장사땅으로 향했다. 화용현에 이르자 사나운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서 항해를 할 수가 없었다. 배에
서 내려 마을의 인가에 있는 임씨의 집에 3일동안 투숙하게 된다. 사씨는 임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자신의 손가락지를 임씨에게 주며 뒷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얼마 후 사씨는 장사에 이르렀으나 두부인은 그 곳에 없었다. 성도에 새로 부임한 아들을 따라간 것
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씨는 자신이 의탁할 곳이 없음을 알고 절망하며 정자기둥 위에 크게 모
년모월모일, 사씨정옥투수사라고 쓰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사씨는 절벽위에서 흐느끼며 정
신을 잃게된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보니 용모가 기이한 청의여동(靑衣女童) 두 사람이 앞에 서있었다. 청의여동은 사
씨를 유리기와와 백옥계단으로 꾸며진 대궐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사씨는 순임금의 부
인인 아황과 여영을 만난다. 사씨는 아황과 여영을 만나 왜 천도(天道)가 무사(無私)한데도 선인(善人)
을 돕지 않는가를 물어본다. 아황과 여영은 사씨가 처한 불행은 곧 행복으로 바뀔 것이며 유연수를
깨닫게 하기 위해 그러한 불행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씨는 오랫동안 아황과 여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잠에서 깬다. 날은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사씨는 정신이 혼미하였으나 한참만에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차향기가 입안에 맴돌고 있었다. 아황
과 여영의 말씀도 모두 기억에 생생했다. 꿈속에서 찾아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니 산 뒤에는 황릉묘
라는 편액이 붙은 묘당 한 채가 놓여있었다. 곧 아황과 여영의 향화(香火)를 받드는 곳이었다. 사씨는 향을 피운 후 절을 올리고 축원했다. 이윽고 한 사람의 비구니와 여동이 사당문으로 들어왔다. 비구니는 사씨 일행을 보고 꿈속에서 관세음이 나타나 사씨를 구하라고 했던 말을 전하고 사씨 일행을 데리
고 군산에 있는 수월암이라는 암자로 데리고 갔다. 사씨는 암자의 불상 위쪽의 찬문(讚文)을 보고 자
신이 옛날에 쓴 것임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비구니는 그제서야 그가 바로 예전의 신성현의 사정옥
임을 알고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고 위로한다. 그 비구니는 유연수와 사정옥을 중매했던 바로 묘
혜승려였다.
이즈음 정실이 된 교씨는 동청과 더불어 갖은 음탕한 짓을 다하면서 유연수를 없애려고 틈만 엿보았
다. 그 무렵 엄숭은 천자를 보좌하면서 신선과 귀신을 숭상하여 기도를 일삼았다. 간의대부 해서라는
사람이 엄숭의 잘못을 탄핵했다. 그러자 천자는 화를 내며 해서를 좌천시킨다. 유연수는 소를 올려 힘
써 해서를 구하려고 하였으나 천자는 조서를 내려 유연수를 크게 꾸짖었다.
어느날 조천궁(朝天宮)의 도진인(眞人, 도사)이 유연수를 찾아왔다. 유연수는 그에게 꿈자리가 불편한
정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내 도진인과 함께 내당으로 들어가 유연수는 집안 기운을 살피게 했다. 진
인은 유연수가 거처하는 침실의 흙벽을 허물어 그곳에서 조그만 나무인형이 수없이 많이 들어있음을
찾아낸다. 진인은 그 나무인형은 유연수의 시첩이 유연수의 애정을 차지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하고 나무인형을 불때워버린다. 유연수는 그제서야 교씨의 행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유연수는
머리를 숙이고 앉아 지난 사오 년 동안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동안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 교씨가 꾸민 것임을 깨닫고 허물을 뉘우치는 마음도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교씨는 평소 약삭빠른 여자였다. 유연수의 기색을 살피고 크게 놀라 유연수가 자신들의 행적을 의심
하고 있다는 것 같다고 동청에게 말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청은 외연수가 외출하여 집이 비었을 때
유연수의 방에 몰래 뛰어들어 유연수가 간신들의 죄상을 논핵한 글을 보았다. 이를 좋은 기회로 여긴
동청은 간신인 엄숭에게 유연수가 감히 엄숭을 희롱하고 상감까지 비난한다고 상소했다. 원래 엄숭은
유연수를 미워하고 있던 차라 곧 그 글을 임금에게 보이고 유연수를 참형에 처하라고 요구한다. 그러
나 충신 서계가 참형은 너무 가혹하다 하자 임금은 유연수를 행주로 유배보내라고 한다. 유연수는 유
배지로 떠나기 전에 교씨에게 사씨의 아들 인아를 잘 보살펴줄 것을 부탁한다. 교씨는 겉으로는 슬퍼
하는 척하며 유연수를 안심시킨다.
동청은 자신이 엄숭의 양자라고 스스로 일컬었다. 이윽고 동청은 엄숭의 천거를 받아 진류의 현령에
올랐다. 교씨와는 하간에서 만나 함께 임소(任所)로 가자고 남모르게 약속했다. 교씨는 유씨 집안의 금
옥(金玉)과 경보(鏡寶)를 모두 털어가지고 하간으로 달려갔다. 교씨는 부임행차 도중에 시비 설매를 시
켜 사씨의 아들 인아를 강물에 처넣어 죽이라고 명령한다. 설매는 사촌언니인 납매의 꾀임에 빠져 여
태껏 나쁜짓을 여러 번 도왔으나 강물에 인아를 던지려다가 사씨가 평소에 자신을 사랑해준 것을 떠
올리며 인아를 갈대 숲 속에 버린다. 그리고 돌아가 교씨에게는 강물에 던지니 곧 인아가 죽었다고
말한다.
유연수는 서울을 떠난 후 반 년만에 구사일생으로 적소(適所)에 도착했다. 그 땅은 모진 바람과 독한
안개가 아침 저녁으로 일어났다. 참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다. 얼마 후 병을 얻었다. 그리고는
자신과 사씨에게 벌어진 일이 곧 교씨와 동청의 짓임을 깨닫고 큰소리로 길게 탄식했다. 밤낮으로 전
후의 일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욱 불편했다. 병세는 어쩔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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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는 흰옷을 입은 여자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는 꿈을 꾼다. 다음날 마당에서 샘이 콸콸 솟아올랐다.
유연수가 시험삼아 그 물을 떠서 마셔보았다. 그러자 유연수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사씨와 유연수가 집으로 돌아오고 동청과 교씨가 응징됨
한림은 선창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부인이 소복 차림으로 한림을 맞으며 바닥에 엎드려
슬피 울고 있었다. 그때 새벽빛이 희미하였다. 그 공손한 사람은 일찍이 물에 빠져 죽었다
고 여기던 사부인이었다. 한림은 너무 놀라 넋을 잃고 목놓아 통곡하였다.
어느날 천자는 태자를 책봉하고 천하에 대사면의 영을 내렸다. 유연수도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받았다. 유연수는 감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무창에 은거지를 만들려고 장사에 이르
렀을 때이다. 유연수는 어떤 관인(관인)의 행차가 북쪽에서 내려왔다. 붉은 곤장과 푸른 깃발을 쌍쌍으
로 대오를 이루고 있었다. 유연수는 숲 속으로 달려가 몸을 숨긴 채 몰래 그 관인을 바라보았다. 그
관인은 바로 동청이었다.
유연수는 주막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시비 설매를 만났다. 시비 설매는 허겁지겁 유연수 앞으로 다가
와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는 교씨와 동청이 작당하여 감행한 온갖 죄상을 모두 말했다. 또한 교씨가
인아를 죽이라고 했지만 인아를 수풀 속에 버린 이야기도 모두 풀어놓는다. 유연수는 인아가 죽었다
는 소식을 듣고 크게 고함을 지르며 슬퍼했다.
그때 교씨는 설매가 한동안 따라오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런데 날이 저물 무렵에야 설매가
도착한 것을 보고 마부에게 설매가 누구를 만났느냐고 물었다. 설매가 만난 사람이 유연수라는 걸 안
교씨는 동청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동청은 건장한 장정 수십 명을 집안에서 징발하여 유연수를 살육
하고 그 머리를 베어서 가지고 오라고 한다. 설매는 교씨의 손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생각하여 자
결한다.
유연수는 악주로 올라가 물가를 왕래하면서 사씨부인의 소식을 탐문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아는 사
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씨의 소식을 수소문하던 중 사씨가 회사정 위로 올라갔다는 말을 듣고 회사정
으로 가 배회했다. 문득 기둥 위를 바라보니 큰 글씨가 한 줄로 씌어있었는데 모년모월모일, 사씨정
옥투수사 라는 글귀였다. 유연수는 숨이 막혀 바닥으로 넘어졌다. 유연수는 강가에서 크게 울었다. 물
결도 따라서 함께 오열했다.
유연수는 머물던 곳으로 돌아와 제문을 쓰려고 했다. 그때 문득 대문 밖에서 고함소리가 크게 일어났
다. 유연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호랑이 같고 이리 같은 도적의 무리
수십 명이 큰 몽둥이와 긴 칼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들었다. 유연수는 크게 놀라 뒷문을 통해 뛰
쳐나왔다. 도적은 저만큼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유연수는 숲 속을 향하여 힘껏 달렸으나 숲이 끝나고
긴 강에 앞에 가로놓여 더이상 달아날 곳이 없었다. 유연수는 마침내 강가의 모래밭 풀숲 속에 엎드
려 몸을 숨겼다. 그때 문득 바람결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떤 고깃배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유연수는 고함을 질러 살려줄 것을 부탁한다. 그 배는 유연수를 태우고 상강을 건너 군산 아래 정박
했다.
유연수는 그제서야 비로소 놀란 정신을 수습하고 자신을 구해준 그 배의 비구니에게 사례를 했다. 비
구니는 유연수에게 선창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유연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
득 들으니 선창 안에서 부인의 우는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유연수는 선창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부
인이 소복차림으로 유연수를 맞으며 바닥에 엎드려 슬피 울었다. 그 공손한 사람은 바로 일찍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여기던 사씨였다. 그들은 슬피 울며 그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었다. 유연수와 사씨는
사세가 변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 이튿날 눈물을 흘리며 유연수와 사씨는
작별했다. 유연수는 악주에 이르러 배를 바꿔 타고 무창으로 갔다. 흩어진 노복들도 역시 그곳으로 모
여들었다.
한편 교씨와 동청은 임지(任地)인 계림으로 갔다. 그 무렵 냉진은 서울에 머물며 도박을 일삼다가 재
물을 모두 잃고 마침내 계림으로 달아났다. 동청은 냉진을 기꺼이 머물게 했다. 그리고는 모든 탐학한
짓을 그와 함께 도모했다. 부유한 백성들을 없는 죄로 덮어씌우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독약으로 살해
했다. 그리고는 그 재물은 모두 빼앗았다. 냉진과 교씨는 동청 몰래 날마다 음탕한 짓을 했다.
얼마 후에 동청은 간신 엄숭에게 십만보화를 뇌물로 바치려고 냉진을 서울로 올려보냈다. 냉진은 서
울에서 간신 엄숭이 천자의 명령으로 박탈관직하여 옥에 갇힐 뿐만 아니라 가산도 몰수당했다는 소문
을 듣는다. 이에 냉진은 십만보화와 교녀를 차지할 생각으로 대궐로 들어가 동청의 죄상을 조정의 법
관에게 고발했다. 법관은 그 사실을 천자에게 알렸다. 천자는 진노하여 동청을 잡아 저자에서 참수하
고 그 가산은 적몰하게 했다. 처첩은 관비로 삼게 했다. 냉진은 관가에 재물을 바치고 교씨를 샀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산동으로 가려했다. 동창에 이르러 객점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다가 크게 취하여
정신을 잃고 곯아떨어졌다. 차부(車夫) 정대라는 자가 그날 밤 자신의 무리와 함께 냉진의 재물 및 수
레를 모두 약탈한 후 도망을 갔다.
어느날 천자는 이부에 명하여 엄숭이 천거하였던 관리 백여 명을 도태시키게 됐다. 그리고 과거 엄숭
의 일로 죄를 입었던 사람들을 다시 기용하게 했다. 그에 따라 유연수는 이부시랑으로 임명됐다. 유연
수는 얼마 후 강서지방의 관리가 됐다. 유연수는 사씨를 강서지방으로 불렀다. 사씨는 부중에 도착한
후 가묘(家廟)로 올라가 예를 올렸다. 강서지방의 대소관료들은 앞을 다투어 그들 부부가 다시 만난
것을 경하했다. 그때 부부와 형제가 모여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유독 아들 인아만은 생사를 알 수 없
었다. 유연수와 사씨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어느날 사씨는 유연수에게 교씨를 잘못 들여서 집안을 그르치게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지만 자식이
없어 대를 끊는 것은 더 큰 죄악이라 말하고 예전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화용현의 임씨 소저를 첩으로
들일 것을 권고한다. 유연수는 사씨의 말을 강경하게 거절한다. 그러나 사씨는 아환을 보내 임씨 소저
의 소식을 묻게 했다. 그리고는 유연수에게 임씨 소저의 덕성을 칭찬하며 첩으로 들일 것을 거듭 부
탁한다. 유연수는 사씨의 간곡한 설득에 임씨를 첩으로 맞아들인다. 임씨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유씨
집안으로 들어간다. 인아의 유모가 임씨의 동생을 보고 인아를 생각하며 슬퍼한다. 임씨는 어느날 기
이한 꿈을 꾸고 울타리 밖에서 그 아이를 주워서 기르게 된 사연을 인아의 유모에게 말했다. 인아의
유모는 그 아이가 바로 죽었다고 생각한 인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씨에게 알렸다. 사씨는 인아를 보
고 목놓아 울었다. 유연수도 관아에 있다가 부중이 진동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마
침내 십 년 동안이나 잃었던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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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교씨는 냉진을 따라 올라가 동창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살림이 영락하여 굶주림과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 냉진은 왕공자라는 집안이 부유하고 나이 어린 사람을 사귀게 됐다.
냉진은 밤낮없이 그를 유혹하여 주막을 출입했다. 때때로 그의 재물을 몰래 훔치기도 했다. 그로 말미
암아 왕공자의 재산은 점점 줄어들었다. 왕공자의 장인은 인근 고을의 태수로 부임했다. 그는 냉진을
잡아들여 곤장으로 백여 대를 치게 했다. 냉진은 장창(杖瘡)이 심하여 독기가 온몸으로 퍼져 결국 몇
달만에 죽고 말았다. 교씨는 다시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낙양의 청루에 들어갔다. 교씨는
청루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창기로 이름을 날렸다.
유연수는 교씨의 소식을 탐문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후 매파를 불러 교씨를 속여 옛집으로 유인한
다. 유연수는 교씨를 잡아들여 교씨가 저지른 열두 가지 죄를 나열한 후 동쪽 행랑으로 끌고 가 목을
매 죽이게 했다. 그리고 그 시체는 거적으로 둘둘 말아 교외로 내다버렸다.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임씨는 연이어 아들 셋을 낳아 각각 웅아· 준아·난아라고 했다. 아들 넷은 모두 급제하여 조정에
이르러 이름을 날렸다. 유연수와 사씨부인도 함께 해로하다가 팔십여 세에 세상을 떠났다. 임씨도 역
시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사씨남정기』의 중층적인 갈등구조
『사씨남정기』는 양반사대부의 가문인 유연수의 가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씨(사정옥)과 교씨(교채
란)의 갈등을 한 축으로 하고 가정외적으로는 유연수와 간신 엄숭의 갈등을 한 축으로 사건을 전개하
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개의 갈등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내의 처와 첩의 갈등은
곧 가정외적인 악인인 엄숭과의 연계로 가정외적인 갈등으로 확산된다. 그래서 『사씨남정기』는 중
층적인 갈등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가정내의 갈등양상을 살펴보자. 유연수를 정점으로 이루어진 사씨와 교씨의 대립은 『사씨남정
기』의 중심적인 갈등이다. 유연수의 처인 사씨는 10년이 가깝도록 유씨 집안의 후사를 잇지 못하자
유연수에게 첩을 들이도록 권유하고, 본인이 직접 교씨를 소개하여 첩으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교씨가
자신의 현실적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사씨를 모함함으로써 본격적인 처첩간의 대립이 시작된다.
여기서 사씨는 처이며 선인의 전형으로, 교씨는 첩이면서 악인의 전형으로 형상화된다. 따라서 사씨와
교씨의 대립은 처와 첩의 대립이며, 아울러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사씨와 교씨의 대립은 유연수 집에 문객으로 와 있는 동청이 교씨와 사통함으로써 더욱 첨예화한다.
교씨는 유연수의 정실자리를 넘보고 급기야는 유연수 집안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흉계를 꾸민다. 동청
과 결탁하여 사씨에게 교씨의 아들을 죽였다는 혐의를 씌워 사씨를 유연수의 집에서 축출한다. 이에
가세하는 인물들이 곧 동청과 냉진, 유씨 집안의 하인인 납매와 설매 등이다.
또 다른 갈등은 가정내의 갈등인 유연수와 엄숭 사이의 갈등이다. 엄숭은 유연수의 아버지 유희와도
좋지 않은 사이였다. 그래서 유연수를 탐탁찮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동청이 엄숭에게 뇌물을 써서 유
연수를 모함한다. 결국 임금이 총명을 잃은 틈을 타서 이기적이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신하 엄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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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신하 유연수를 조정에서 몰아내고 나라를 어지럽힌다. 곧 가정내의 갈등이 가정외적인 갈등양
상과 맞물리는 것이다. 가정의 문제는 곧 국가의 문제가 된다. 유연수 집안으로 대표되는 가정의 혼란
은 국가의 혼란과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또한 그것을 상징한다. 국가적 혼란은 가정적 혼란의 공간
적 확대라고 할 수도 있다. 가정내에서의 처/첩의 대립과 갈등은 곧 조정의 충신/간신의 대립에 해당
되며, 그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씨남정기』의 갈등양상은 가정내적인 것과 가정외적인 국
가의 갈등양상이 겹치는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양상을 지닌다.
『사씨남정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인물유형
『사씨남정기』는 양반사대부 가문인 유연수의 가정을 무대로 벌어지는 사씨와 교씨의 갈등을 통해
사씨의 현숙함과 부덕(婦德)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사씨남정기』에는 사씨를 중심으로 하는 선인형
인물과 교씨를 중심으로 모이는 악인형 인물이 한 무리를 이루며 다양하게 소설의 사건을 전개시키고
있다.
주인공 사씨는 작가가 가장 긍정적인 인물로 드러내는데, 작품이 제기한 주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다. 사씨는 부덕(婦德)을 몸에 드러내는 양반가문의 현모양처형 인물이며, 삼종지도, 칠거
지악을 저지르지 않으려는 이상적인 양반사대부의 여성형이다. 교씨의 흉계로 유연수의 집안에서 쫓
겨나면서 갖은 고초를 겪지만 자신의 지조는 굽히지 않는다. 사씨의 이런 인물유형은 사건의 전개에
따라 만들어지기보다 본래부터 유교적 가치와 규범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유교이념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씨의 이러한 형상을 통하여 작가는 바르고 정직한 사람을 헐뜯고 모해하는 인물들은 한때
는 득세하고 권세를 뽐내며 살아갈 수 있지만 결국은 큰 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긍정적인 인물 가운데는 유연수의 고모 두부인이 있다. 두부인은 유씨가문의 어른으로서 죽은 유연수
의 아버지인 유희의 유언을 받들어 유씨가문을 다스린다. 무엇보다도 사씨의 어짊을 알고 사씨와 유
연수의 결혼을 주관한다. 또한 교씨에게 모함받는 사씨의 억울함을 알고 유연수에게 사씨의 보호를
부탁한다. 우화암의 승려인 묘혜 역시 긍정적인 인물로 드러난다. 사씨에게 관음화상을 가져가 관음찬
을 받고 유연수와의 혼사를 가능하게 하는 인물로 사씨가 고난을 겪으며 남행하며 위태로울 때마다
도와준다. 묘혜의 이런 행위는 곧 하늘의 계시에 의해 가능한데, 하늘의 이치가 무엇이며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유연수는 유씨 집안의 가장으로 얼핏보기에는 학식이 있고 사리에 밝은 사람처럼 보이며
바른말을 하여 간신인 엄숭의 박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는 자기의 가정을 제대로 꾸
려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교활하고 간악한 교씨의 꾀에 속아 정
실인 사씨를 내쫓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엄숭에게 모함을 받아 귀양가는 몸이 된다. 결국 사대부인
유연수를 통해서 작가는 대표적인 유교이념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씨남정기』에는 부정적인 인물들의 형상도 사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부정적 인물인 교씨는 교
활하며 투기와 패륜과 패덕에 젖어 인간의 양심을 잃은 인물로 드러난다. 사씨를 멀리하고 유연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갖은 간교한 짓을 일삼다가 동청과 냉진과 공모하여 자기 아들을 죽이고 그
죄를 사씨에게 뒤집어씌워 사씨를 내쫓는다. 또한 엄숭의 권세를 빌어 유연수마저 귀양가게 하고 동
처의 아내가 됐다가 다음에는 냉진과 음탕한 관계를 맺으며 드디어는 창기로 타락한다.
동청과 냉진, 엄숭도 역시 개인적인 추악한 욕심과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한 가문이나 국가의 질서
를 어지럽힌다. 이들은 모두 재물을 추구하며 철저히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한다. 결국 이들은 재물때문에 흩어지고 망한다.
-감상평
『사씨남정기』는 이런 인물을 통해 올바른 가치가 무엇이며, 무엇이 긍정되어야 하며, 무엇이 부정되어야 하는지의 교훈적인 관점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유교적 선과 악그리고, 가문의 회복과 번영의 문제 다뤄『사씨남정기』는 다양한 인물과 중층적인 갈등을 통해 유교적 선과 악에 대한 집요한 추구와 가문의 회복과 번영의 문제를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다.
김만중은 긍정적인 인물들을 통해 유교적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적 관념을 체현하고 있는 사씨
는 현모양처형의 인간으로, 충효사상에 따라 행위한다. 교씨는 사씨의 일방적인 공격을 통해 그 간악함을 나타내고, 사씨는 수동적인 인고의 자세를 통해 그 선량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만중의 의도는 대립의 결과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했던 교씨는 파멸하게 되고, 교씨의 모함으로 인해 온갖 역경을 겪었던 사씨는 다시 복권되어 유연수와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 사씨의 복귀는 교씨와의 투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착한 성품에 대한 조상의 음우와 천우신조로 형상화되어 있다. 사씨는 유교의 도덕원리인 삼강오륜의 이상적인 체현자로서 가장 선량한 사람이다. 이
와 같은 사람에게는 응당 복된 삶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논리이다.
교씨의 파멸은 사씨의 반격의 결과라기보다는 스스로가 초래한 일종의 자멸로 곧 인간의 부정적이고 간악한 마음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씨는 자신의 간계가 밝혀지게 되자 동청과 결탁하여 유연수마저 모함으로 유배시켜 버린다. 동청과 살다가 동청이 몰락하자 냉진과 결탁하고, 마침내는 창녀로 전락하고 만다. 교씨는 유교사회에서 지켜야할 여인의 덕목을 갖추지 않은 인물이며 현실적인 욕망과
물질중심적인 가치관을 지녔기 때문에 철저히 응징된다.
『사씨남정기』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제는 가족의 헤어짐과 만남을 통해 보여주는 가문의 몰락과 번영의 문제이다. 집안의 어른인 유연수의 아버지 유희가 죽고, 그 아버지가 아들의 앞날을 부탁한 두부인(유연수의 고모)마저 멀리 떠나며, 심지어 사씨 친정의 홀어머니까지 죽으면서 젊은 유연수가 가장인 유씨 가문은 흔들린다. 이때 유씨가문을 위협하는 이들은 가문이 확실치 않은 떠돌이인 동청과 냉진이거나 떠돌이같은 신세의 사람인 교씨라는 점은 이런 측면을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문이 안정을 되찾을 때는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만나며 멀리 떠났던 두부인도 돌아오고 그 두부인
의 자손들과 사씨 친정형제들까지 앞다투어 영달하게 된다. 떠났던 가족들이 모두 돌아오고 잃었던것을 그대로 둘려받음으로써 가정이 집단적으로 복구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사씨남정기』는 가족 또는 가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가장이 바뀔 때, 그것도 새 가장이 미흡할 때 가족이라는 집단에 닥칠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때 가족구성원들, 특히 가장과 며느리된 여자가 지녀야할 품성과 맡은 역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씨남정
기』는 가정을 혼란에 빠뜨린 자들을 유교적 가정윤리에 입각하여 깨우치거나 징벌하여 가정의 안정을 회복시킴으로써 가정적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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